지난 6월 10일, 서울 광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찼다. 긴 시간동안 차벽으로 봉쇄되어 있던 시민들의 광장은 그제서야 다시 시민들의 것이 되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한 시국 선언을 하였고 - 탈이념을 지향하는 것이 아쉬었기는 했지만 -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 인사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조사 자료도 보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용산 참사 현장의 사람들, 10여년 전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조정에 희생된 평택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집회 해산에 맞춰 전경들의 광란의 밤이 시작되었다. 최루액과 색소 분사로는 모자랐던지 이번에 꺼내든 것은 합금으로 된 진압봉이었다. 진보신당 칼라TV의 리포터가 취재하는 도중 진압봉에 맞는 사건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마치 토끼처럼 - 그래서 전경들의 진압을 토끼몰이라고 하지 않는가 - 전경들에게 쫓겨 다녔다. 비록 전경들이 자의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전경들과 시민들 사이의 골은 깊었다. 마치, 이 시대가 22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세뇌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빼면.

 

최규석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요청을 받고서 작년에 웹으로 선 발표, 그리고 창비에서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를 합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100℃」는 22년 전 6월 항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전의 6월 항쟁을 다룬 작품들이 항쟁 내부와 이후에 시선을 맞추었다면, 최규석은 작품에서 6월 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과 사람들의 내면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영호는 어떤 캐릭터였는가? 어렸을 때부터 국가에서 시행한 각종 반공 정책 - 교육이든 문화 상품이든 - 속에서 살아온 영호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까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인줄 알았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그동안 몰랐던 진실들을 알게 되자 영호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한다. 투쟁을 하고 싶어하지만, 집안 사람들과의 괴리는 영호의 행보에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고 마냥 집안 사람들이 현실 뒤의 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영호의 어머니, 형 모두 초반부에서는 영호의 행동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말리는 행동을 취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모두 국가의 폭력을 당해보았거나, '현실의 맛'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부모가 보도 연맹 사건에 휘말려 총살을 당하고서 빨갱이로 놀림을 받는다. 형은 대학 시절 유신 반대 투쟁에 적극적인 인물이었으나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사회 운동과는 담을 쌓는 인생을 보낸다. 정말 투쟁을 해야할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현재 한국에서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사람들의 단면이 투영된다. 그러나 가만히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영호가 데모로 투옥되고 어머니는 영호를 면회하기 위해서 경찰에 찾아간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소설가, 그리고 민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머니에게는 어렸을 적,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방관자의 스탠스에 있던 형은 점점 미쳐돌아가는 상황, 영호의 투옥, 그리고 대학생들의 비난을 들으면서 대학생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상황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되자 마음 속에 깊게 숨겨져있던 저항의 불꽃에는 불이 켜진다. 그리고 그것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으로 인해 빠르게 퍼져간다. 물이 끓기 시작한 것이다.

 

미지근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뜨거워져가고, 99℃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물은 100℃가 되어야 끓어 넘치는 법, 1℃가 채 모자랐다. 그리고 남은 1℃는 민주화를 위한 사람들의 열망, 그리고 사람들의 피로 완성이 채워졌다.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고 혼수 상태에 빠진 사건으로 사람들은 집에서, 회사에서 있는 것을 포기하고 거리로,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정부는 무정차 전철 통과, 조기 퇴근 등으로 집회를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런 조치들은 사람들이 집회에 쉽게 나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6월 10일,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한 100℃가 되었다. 열망은, 끓어 넘쳤다.

 

만화는 6월 10일 이후의 짤막한 상황, 그리고 우리가 얻은 것을 말한다. 최규석은 우리가 얻은 것이 '단지 백지 한 장'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찢을 수도 있고, 더럽힐 수도 있는 조그만한 백지 한 장이지만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꿈꿀 수 없는 백지 장. 한국은 이 백지 한 장으로 지난 10여년 간 지난 과거에서 도약하는 삶을 살아왔다. 비판도 많고, 아쉬운 점도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절망할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헌데 지금은 어떠한가. 정책과 인식은 멈추다 못해 아예 역회전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정당한 집회를 '국가 이미지 훼손'으로 몰아 붙인다. 우리가 피를 흘려 얻었던 백지 한 장이 구겨지고 태워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00℃」는 22년 전의 일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하다.

 

덧붙이는 글.

하나. 최규석은 기존 메이저 만화 출판사의 공모전에서 데뷔를 했지만 정작 작품 활동은 메이저하고는 거리를 둔 곳에서 주로 했다. 그의 첫 번째 장편 만화 「습지생태보고서」는 경향신문에서, 두 번째 장편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은 『한겨레21』에서, 그리고 이 작품은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웹으로 발표한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가 못지 않은 그의 인기는, 한국 만화의 발표 형태가 꼭 잡지로 한정되지 않아도, 그리고 반드시 웹툰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

 

둘. 처음 이 작품이 웹으로 발표되었을 때의 감상은 최규석의 '수작'이었다. 기관의 부탁을 받고서 제작한 작품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전작들에 비해서 블랙 코미디나 위트가 부족했다. 이런 부족함을 느꼈는지 단행본에서는 아쉬운 부분을 채워줄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가 30여페이지 분량으로 추가되었다. 시민교육센터이한 씨가 만든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교안 <어떤 민주주의로 갈 것인가>를 바탕으로 만든 부록은 기존에 가진 정치에 대한 편견과 기본적인 정치 이론, 그리고 향후 방향을 친절히 알려준다. 촛불 소녀를 형상화 한 캐릭터 촛농, 전작 「습지생태보고서」에서 인기를 얻은 정치에 무관심한 캐릭터 녹용, 그리고 영화 「브이 벤데타」에서 나왔던 작년 촛불 퍼포먼스에서 큰 인기를 끈 브이가 만화적 기법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알려준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프레시안 키워드가이드 용으로 올리는 글. 조만간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를 리뷰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

 

100℃ - 10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