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6월 항쟁 22주년을 기념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몇 개월간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있던 광장은 작년 5월 이후로 오래 간만에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다. 많은 사람들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했고, 거꾸로 가는 MB 정부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전경들은 밤이 되자 무자비한 폭력을 개시했다. 6월 항쟁 22주년은 그렇게 피의 잔치로 막을 내렸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지금도 사람을 잘못 뽑은 바람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데, 원하지도 않았던 인물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22년 전은 어땠을까? 지금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유들유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정권을 무너뜨렸다.

 

최규석이 작년 6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요청으로 인터넷으로 선 발표하고, 1년 후 지금 창비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100℃」(이하 백도씨)는 6월 항쟁이 일어나기까지 사람들의 군상들을 그리고 있다. 반공 소년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대학생 영호가 사회 현실에 눈을 뜨고 6월 항쟁에 참여하는 과정이 주를 이루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지를 친다.

 

작가가 어떤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처음에는 거절할까 생각도 했다."고 밝혔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6월 항쟁을 다룬 작 (만화나 자료집을 포함해서) 중에서 훌륭하다고 밝힐 수 있다. 주인공을 무조건적인 민주화 투사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과 가족과의 충돌, 그리고 '지난 시절'에는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영호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은 전두환 정권 말기, 정권의 횡포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장에 위장 취업한 영호의 대학 친구는 공장장에게 밟힌다. 정권은 사람들의 분노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지금은 사기로 밝혀진 사건인) '평화의 댐' 사건을 만들었다. 데모를 하다가 잡혀간 학생들은 '원인 모를' (과연 이것이 원인 모를 이유였을까?) 이유로 죽어갔다. 심지어는 경찰이 대학생을 '수사라는 이유'로 강간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끝내는 서울대학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선배를 찾는다는 미명 아래.(그의 선배 박종운은 현재 한나라당 당원이다.)

 

정권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어도 일반 시민들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영호의 어머니는 보도연맹 사태에 휘말려 '빨갱이' 라는 죄명 아래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단지, 쌀이 궁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입을 한 것 뿐이었다. 영호의 형은 박정희 정권 당시 치열하게 투쟁을 하던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먹고 살기 위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들은 '가만히 있은 것 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정권의 행태를 보며 점점 부글부글 끓어갔다. 다만 아직 끓기에는 1℃가 모자란 99℃였다.

 

끝내 박종철 군이 사망하고 그의 죽음을 은폐하려던 시도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밝혀지자 1℃가 모자라던 시민들의 마음은 100℃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순박하게만 보였던 영호의 어머니는 영호가 잡혀가자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에 가입한다. 끌려가고, 남편에게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맞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겪었던 끔찍한 추억은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게 만든다. 영호의 형 또한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신과 함께 했던 대학 친구들과 모이기 시작한다. 6월 1일에는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서 서울 향린교회에서 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서 사경을 헤맨다.

 

그리고 6월 10일, '그 날'. 세상은 움직였다. 시민들의 마음은 마침내 100℃가 되어 끓기 시작했다. 부글, 부글. 정권에 향한 분노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정권의 집요한 공작도, 백골단도 막지 못했다. 택시 기사들은 클랙션을 울리기 시작했고 영호의 형을 포함한 넥타이 부대들은 옛날 자신이 가졌던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운다. 그리고 만화는 이 시점에서 막을 내린다.

 

작가는 후기에서 "우리가 6월 항쟁으로 얻은 것은 백지 한 뿐이었다. 조금만 구겨지면 쓰레기가 되거나 누군가 낙서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을 꿀 수 없는 약해도 소중한 백지였다." 라고 밝혔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백지를 얻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을 얻었다. 우리는 그 희망을 토대로 갖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서 20여년간 계속 달려왔다. 그리고,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이 암초는 22년 전에 만났던 것보다 약하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을 단 순간에 무(無)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암초의 수하들은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던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날리고, 소화기를 쏘고, 군화발로 밟고, 방패를 날리고, 진압봉으로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우리는 겪었다. 22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를 청소년들이, 대학생들이, 세상 물정을 모르던 주부들이, 꺼진 열정을 앉고 먹고 살기에만 바빴던 직장인들이 이루었다. 22년 전의 여름은 뜨거웠고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고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예전보다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이 암초를 부술 힘은, 충분하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만화 소개 코너 <코믹 소사이어티> 제 29화, 2009년 6월 16일에 메인에 올랐다. 비화를 밝히자면, 사실 기사, 정작 「100℃」를 주문했는데 하루 늦게 오는 바람에 급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올려진 것을 보고 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 '그래서, 어쩌자고?' 가 실리지 않았다. 이 부분은 조만간 보론으로 올릴 것임. 기대하세요.

 

100℃ - 10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