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사이에 책이 세 권이나 나왔다. (사실 하나는 나올 예정이니, 엄밀히 말하면 두 권이라고 해야겠지만.) 수입 번역본도 아닌 한국 작가의 장르 문학 소설이 연이어서 나오는 것은 우연의 일치를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참 대단한 일이다. 최근에 성장세를 타고 있다고 하나 아직도 척박한 한국의 장르 문학 시장에서 책을 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번도 정식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카피라이터가 공포 문학 창작 모임인 「매드클럽」에 가입하고 나서 이룩한 성과이다. 그녀의 이름은 강지영이다.
강지영의 단편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황금가지에서 펴낸 밀리언셀러클럽 한국편 시리즈 중의 하나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실렸던 「거짓말」이었다. 단순한 1인칭 시점이지만 계속 서술자가 변하는 형태로 쓰여진 이 단편은, 하나의 거짓말이 어떻게 주변은 뒤흔들어 놓는지를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써나간 단편이었다. 말이 '서술자 변경' 이지, 화자를 계속 바꿔나가면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단편이었지만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 후로 별 소식이 없다가 다시 단편을 접하게 된 것은 『팝툰』에 실린 「점」이었다. 여름 특집으로 실린 단편이었는데,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유려하게 조합한 작품이었다. 거기에다가 그 다음 호에 실린 「낙원 고시원」을 보고 나니, 이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기대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거짓말」, 「점」은 씨네21북스에서 나온 그녀의 첫 단편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기대하고 예측했던 대로, 2009년은 단연 그녀의 작품이 폭발하는 해가 되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KBS1의 이야기 공모 프로그램 「이야기발전소」에서 당선된 단편을 바탕으로 『팝툰』에 연재한 『심 여사는 킬러』를 마무리 짓고, 첫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그리고 이번에 리뷰할 장편인 (실은 이 작품이 『심 여사는 킬러』보다 먼저 끝을 맺은 작품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강지영의 첫 장편인 셈이다.) 「신문물검역소」(時作시작-웅진씽크빅 임프린트) 가 출간되었다.
「신문물검역소」는 턱걸이로 과거에 급제한 함복배가 제주도로 부임되어 '신문물검역소'라는 기관의 소장을 맡게된 후의 해프닝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이 추천한 것처럼,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의 장르가 한 데 뒤섞여있다. 분명 강지영은 단편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한 없이 어두운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와중에서도 블랙 코미디를 삽입해 독자의 마음을 이리 저리 헤집어 놓는 마력을 한껏 드러냈었다. 이번 장편에서도 각각의 부분은 무척 훌륭하다. 브래지어를 외국의 관모로 오해해 갓 대신 쓰고 다니는 함복배의 모습은 무척 재미있고, 기수영과 강미호를 통해서는 인간의 비뚤어진 심리의 무서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부분대로 놓고 보면 수작이나, 한데 모아놓고 보니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든다. 신문물을 소재로 한 위트와 멜로, 그리고 송일영, 기수영을 놓고 벌이는 서스펜스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에 서스펜스 파트에서 신문물이 활약을 하고,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나 그것도 거기까지이다. 제목은 「신문물검역소」이지만 신문물은 이야기의 중요한 위치에 서있지 않다. 단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엽기 살인의 도구 역할만 충실히 수행한다. 작가는 나름대로 조화를 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듯 하나,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불안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 파트의 연출은 너무나도 훌륭하다. 오히려 기존 단편에서는 심각한 주제만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블랙 코미디를 넘어서는 재미를 선사해서 강지영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신문물 파트와 서스펜스 파트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주제가 흥미로워서 영화관에 들어왔는데, 정작 보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밖에 나오지 않고서 딴 이야기만 풀어 놓는 영화를 본 기분이라 할까. (나중에 나오면 리뷰하겠지만) 「심 여사는 킬러」도 끝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놓고 보면, 아직까지는 강 작가에게 장편은 무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부분을 잘 해결했더라면 좀더 괜찮은 작품이 탄생했을텐데, 너무나도 아쉬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중으로 『팝툰』에 신작 장편을 연재한다는 데, 그때는 이번에 내놓은 장편의 아쉬움을 충족할 만한 장편이 나왔으면 한다. 아직도 강지영은 한국의 기대되는 신진 장르 문학 작가의 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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