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루리웹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화책 인상에 대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학산문화사가 지난 달 28일에 발매한 타다시 카와시마 글, 아다치 토카 그림의 만화「최종진화적소년 얼라이브」 18권의 가격이 5,000원으로 발표된 것이 해프닝의 원인이었다. 곧 특별판 (아다치 토카의 단편 부클릿이 특별 부록으로 들어있었다고 한다.) 경우만 5,000원이고 특별판이 소진되면 원래 발매되던 가격 (4,200원) 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논란은 곧 수그러들었지만 이 작은 해프닝이 주는 의미는 무척 크다. 아직도 한국은 만화책 가격 인상에 대해서 격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화책은 비싸져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핏발을 세우고서 키보드를 두들기며 '당신은 만화 출판사의 주구' 냐는 식으로 몰아붙일 사람들이 눈에 선하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만화 출판사와 인연이 약간이나마 있었고 작은 신문에서 조그만한 만화 기사 /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기자로서 제가 만화 출판사만 대변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일련의 만화책 가격 인상을 놓고서 벌어진 논쟁은 무척 재미있었다고 할까. '소비자가 왕' 이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서비스 산업을 대변하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서 단순히 날뛰는 왕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인 만화책 가격 이야기를 하기 전에 책 값이 어떻게 결정되는 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보통 책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을 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페이지의 수이다. 페이지의 수가 많을 수록 당연히 책 값은 비싸진다. 그 다음으로 결정짓는 요소는 판형, 종이의 크기이다. 흔히 국판 / 사륙배변형판 등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판형이다. 책의 크기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책은 한 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소 백 장 후반에서 많게는 오백 장도 넘어가는 것이 책이다. 그런 책들은 보통 한 번에 천 권 씩 찍으니 몇 백만장의 종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이, 작은 차이도 모이면 엄청난 차이가 된다. 오죽하면 잡지에서 발행 비용을 절감하는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판형 축소이겠는가. (그 밖에도 인원 축소, 간기 변경 등의 방법이 있겠지만 책 자체를 바꾸는 방법에서는 이게 제일 쉬운 편이다.) 그리고 인쇄의 종류 (흑백 / 2도 / 3도 / 칼라) 와 종이의 질에 따라서 책의 가격이 결정된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부록이나 책의 장르에 따라서 (사회 과학 / 논문 서적의 경우는 잘 팔리지 않으므로 그것을 고려해서 가격을 조정한다.) 가격이 결정된다.

 

이제 만화책 가격에 대해서 살펴보자. 만화는 보통 적으면 190여 페이지 후반, 많으면 200여 페이지 중반에서 1권으로 묶인다. 판형은 최근 들어 고가용 만화의 출간으로 다양해졌으나 대부분 점프 만화 스타일의 B6신 판형을 쓰거나, 순정 만화가 주로 사용하는 B6 판형을 주로 쓴다. 일반 단행본의 경우, 그 정도의 판형과 페이지수를 쓰면 최소 9,000원 대에서 10,000원을 넘어가는 선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하지만 일반 만화책은 (팬북이나 애장판 등을 제외하고서) 비싸보았자 5,000원에서 가격이 끝난다.

 

왜 이렇게 가격이 것일까? 그것은 한국 만화가 일본의 만화 시스템에 따라서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화책 뿐만 아니라 만화 잡지도 싼 이유도 일본식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일본의 만화 환경은 (미디어 믹스/OSMU 등의 부가 사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박리다매에 기초한다.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파려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 이런 식으로 만화 판매 환경이 구축된 것은 일본의 서브 컬쳐의 형성 과정가 연관이 깊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현석 씨 - http://warmania99.egloos.com/ - 의 일본 통신을 참조할 것.) 한국에서는 서울문화사가 「아이큐 점프」를 통해 이름, 캐치프라이즈와 함께 일본식 만화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래 90년대 만화 호황기에 이르기 까지 기록적인 판매량을 유지하면서 이런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만화의 판매량이 감소했다는 것.

 

만화 판매가 감소한 것에 대해서는 수많은 분석 (대여점/스캔본으로 인한 판매 감소, 만화 이외의 즐길 거리 증대, 신진 만화가들의 실력 저하 등등. 나는 만화 외의 놀 거리가 계속 늘어나는 상태에서 청소년 보호법이 결정타를 박아버려 다양성에 피해를 입었고, 거기다가 스캔본으로 인해 불법 다운로드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출판 만화 산업이 부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존재하지만 여기는 그걸 따지는 자리가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글을 쓰기로 하고, 하여튼 기존 출판 만화가 점점 안 팔리게 되었다. 같은 양의 페이지 / 판형의 일반 단행본이 10,000원을 넘어가기 시작한 시점에서 정말 팔리지 않는 이상 막심한 손해를 보게 생긴 것이다. 출판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타개를 시도했지만 - 잡지 창간, 레이블 증대, 심지어는 '새천년은 디지털 시대'라면서 무리하게 디지털과 만화를 접목하는 시도도 있었다. - 결과적으로 잘 되었다. 90년대에 비해 너무나 줄어든 판매량으로서는 예전처럼 3,000원대에 만화책을 파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럼 어떡해? 올려야지. 기존 출판 만화 시장의 불황이 장기화됨과 동시에 새로운 출판 만화의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린이용 칼라 와이드판형의 만화 (흔히 '학습만화'라고 부르는 것) 였고, 나머지 하나는 애니북스, 길찾기로 대표되는 고가(高價) 만화였다.

 

고가 만화는 기존의 메이저 만화 출판사 -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 에서 펴냈던 만화책과 차별을 시도했다. 종이의 품질을 일반 단행본과 같게 했고, 편집 (기존 출판사가 원고를 스캔하여 편집해 인쇄 필름을 만들었다면, 이들은 아예 출판사로부터 인쇄 데이터를 받아 편집했다.) , 디자인이나 번역의 면에서도 고가의 가격과 걸맞는 완성도를 보였다. 이렇게 할 수 있던 데에는 대부분의 고가 만화 레이블이 종합 출판사 산하에 있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애니북스는 문학동네, 행복한 만화가게는 열림원, 세미콜론은 사이언스북스-민음사의 산하 레이블이다.) 그 이면에는 기존 만화책의 심각한 품질에 불만족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있었다. 고가 만화 출판사는 이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가격을 높여 수익 구조를 안정화시키되, 수준을 향상시켜 가격에 대한 논란을 잠재운 것이다. 선정한 작품들도 묻혀있거나 매니아들 사이에서 추앙받던 작품이나 애장판, 또는 성인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었다. 고가 만화 시장이 성장하게 된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예전처럼 만화를 내던 출판사들은 고가 만화 출판사처럼 높은 가격으로 만화를 낼 수 없었다. 설사 가격을 확 올린다고 해도 차이가 날 정도로 종이의 질을 올리거나 다른 면에서 독자의 마음을 충족하지 않는 이상 독자의 의구심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북박스가 일반 단행본에서 사용하는 용지와 비슷한 품질의 종이를 사용하면서 가격은 싸게 내놓아서 '용자'라는 별칭을 얻었었다. 얼마 안 가 사용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올리더라도 물가나 환율 상승 등의 구실을 내걸고 찔끔찔끔 올릴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도 금새 한계에 도달했다. 이미 한국의 만화 시장은 박리다매로 연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적게 내놓으면서도 손해를 보지 않는, 출판 시장과 똑같은 선에서 만화 시장을 재구성해야 했다. 그 첫 시도가 대원씨아이의 2007년에 첫 선을 보인 브랜드 「미우」였다. 「심야식당」,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등을 발간한 「미우」는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었다. 곧 다른 출판사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중견 만화/소설 출판사인 조은세상이 2 ~ 30대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 「Ally Comics」를, 학산문화사는 성인 남성을 노린「2030코믹스」, 서울비주얼웍스와 합작한 「스튜디오 아이」, 2 ~ 30대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 「시리얼」를 런칭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문화사가 조주희의 격주간 순정만화지『윙크』에 연재한 「키친」을 2 ~ 30대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 「마녀의 책장」으로 발간함으로서 메이저 3사 모두 고가 만화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만화 이외의 엔터테인먼트의 발달과 최근에 점차 기가 꺽이고 있다지만 아직도 열기가 거센 불법 다운로드 등의 요소들이 결합함으로써 한국 만화는 더 이상 박리다매식 구조를 먹고 살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출판 만화 시장에서 일부 인기 웹툰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일이 생기고 순정 만화와 일부 소년 만화를 제외한 잡지 연재 만화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태에 놓였다. 만화 잡지에 늦게 진출한 씨네21이 『팝툰』을 (정확히는 2007년 후반의 이성욱 편집부 체제에서부터) 2 ~ 30대가 소장하고 싶은 잡지 컨셉으로 만들고, 단행본들도 전부 고가에 유려한 디자인으로 만들게 된 것도 이상 일본식 만화 시스템이 예전같지 않다는 반증이다. 만화책의 가격 인상에 악다구니처럼 대응하기 보다는, 가격에 걸맞지 않은 품질의 만화를 비판하는 것을 어떨까. 기왕이면 서점에서 만화책을 사면서 비판하면 더 좋은 비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만화계를 비판한 글 중에서 가장 바보같은 비판은, '더러워서 원판 사겠다' 였다. 도피하면 할 수록 더러워진다는 느낌은 더욱 커진다. 차라리 제대로 느끼고서 비판하자. 그런 깨달음없이 단순히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공격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