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이번에 개봉한 극장판 「NARUTO - 나루토 - 질풍전 : 불의 의지를 잇는 자」를 어떻게 생각하면서 보고 있을까. 원작 만화의 팬이라서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영화가 별로 없어서 보았을 수도 있다. 장대한 스토리에서 잠깐 벗어난 일면을 접하고 싶은 관객, 캐릭터 간의 우정을 사랑으로 망상하면서 보는 관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 리뷰는 뭉뚱그려  '아이들용 영화'로 치부하는 경향이 보인다.

 

분명 「나루토」는 소년 만화이다. 하지만 소년 만화가 유치한 것은 아니다. 클리셰를 이용하면서도 심각한 주제를 담을 수도 있는 것이 만화이다. 그런 면에서 「불의 의지를 잇는 자」는 액션 속에 생각할 거리를 잔뜩 포장해놓은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있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동료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녀석은 쓰레기다."

 

우즈마키 나루토의 스승 하타케 카카시의 명대사.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소년 시절 카카시의 동료였던 우치하 오비토의 말이기도 하다.) 이번 극장판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번 극장판에서는 특히 부각되는 주제이다.

 

카카시는 작중에서 닌자 오대국의 혈족 계승 닌자가 계속 사라지는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호카게 (나루토가 사는 나뭇잎 마을의 지도자 - 필자 주) 인 센쥬 츠나데와 상의해 혼자 마을을 떠나게 된다. 카카시의 친구 나루토는 그 사실을 미리 알 리가 없다. 규칙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준 사람이 카카시였기에 나루토는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실제 사람이 사는 사회도 그렇지 않은가. 살다 보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나 규칙이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사태가 속출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어떤 가난한 청년이 가족들에게 저녁을 먹이기 위해서 빵을 훔치다 잡히게 되었다. 법대로라면 형법에 의거하여 절도죄로 훔친 빵만큼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법에는 각각의 사유가 고려되지 않는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훔치거나 생계를 위해서 훔치거나 형량은 전부 동일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판사의 재량인 '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절도죄지만 가끔은 가련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일이 발생한다.

 

극 중에서는 나루토의 친구들이 '호카게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나루토, 사쿠라, 사이가 카카시를 구하러 가는 길을 막는다. 소년 만화의 특성상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합류하지만. 그래도 지도자의 명령이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흡사 권위주의 정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였다. 어떤 법이나 규칙, 명령도 인간을 압도할 수 없는 것 당연한 이치가 아니던가?

 

 

"그들이 비하면 너무나 약해서, 힘을 기르고 싶었어."

 

이번 극장판의 악역인 히루코의 대사. 히루코는 나뭇잎 마을에서 전설의 세 닌자로 불리우는 오로치마루, 지라이야, 츠나데의 친구였다. 하지만, 힘이나 실력이 항상 그들보다 떨어져 언제나 열등감 속에서 살아왔고 (그 세 명이 어린 마음에 놀려댄 것도 문제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보는 사람이 많은데, 모르는 것은 또한 가장 폭력적이기도 하다.) 그 열등감은 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낳아 금지된 비술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힘에 대한 애정은 세계를 지배하고 싶다는 빗나간 목표를 만들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무수히 많다. 부모님은 TV에 나온 저 '엄친아'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이리 저리 비교해 가면서 한숨을 내쉰다. 공부를 해도 성적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체육 시간에는 평소에 운동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이는 녀석이 한 반에 한 명씩 있다. "이제 다 틀렸어, 꿈도 희망도 없어."라는 모 애니메이션의 대사와 함께 OTL을 외치고 싶어진다.

 

히루코를 이 상황에 비추어 보면, 자신이 '엄친아'들을 보면서 절망에 빠지다가 엇나간 길을 걷게 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사회는 그런 사람을 흔히 '비행 청소년'이라 칭한다. 그들이 벌이는 각종 폭력은 결코 좋은 일이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들을 욕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작중의 닌자 세계관에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쪼임'이 없지만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항상 비교에 시달린다. 그 압박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 모든 것의 해결책을 '동료와의 우정'에서 찾는다. 자신의 모자란 힘에 실망하지 않고 실력이 뛰어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소년 만화의 특성상 문제를 우정으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색채가 짙지만, 절망에 갇힌 채 주위를 돌아보지 않았던 히루코에게는 최고의 특효약일 것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영화 리뷰 코너 「영화万보기」, 2009년 10월 23일 기사. 원래 프리뷰 기사가 개봉일 날, 리뷰 기사가 개봉 다음 날에 순차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편집부하고 입장이 꼬이면서 결국 이 기사만 올라오게 되었다. 제목도 "현란한 액션 속, 생각할 거리 잔뜩" 으로 바뀌었다. …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기자와 편집부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독자만 본다는 것.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