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나, 시민들 사이에서 진보에 대해서 논하는 이야기는 한결 같습니다. 항상 반대하는 세력으로만 비쳐보이고,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이미지를 돌파하자는 전략은 이미 인터넷에서 널리고 널렸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을 개발하자. 서민 속으로 뛰어들자.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선명한 색깔을 보여야 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방법에서만 그치고 정작 전략의 수준이 아닌 대책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 / 미디어 연구가이신 capcold 씨가 워드프레스 블로그에 '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라는 유용한 글을 남겼습니다. 사실, 이 글은 진보진영 뿐만이 아니라 현 민주당 진영이나 심지어는 여당에서 참고해도 유익할 정도로 중요한 글입니다. 혁명만, 허울 좋은 이상만 내세우기 전에 정치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대중에게 접근할지를 알아야 발리는 일이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워드프레스가 워낙 한국에선 비인기에다가, 설치형 블로그라는 이중의 제약이 있어서 글이 잘 퍼지지 않는 만성 증후군으로 인해 언제나 그랬듯이, 이 글도 묻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그래서, 제 실력으로 나마 약간은 접근성이 좋은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제 텍스트큐브 블로그에 담론을 정리한 글을 올립니다. 감사히 봐주시면,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 이 글의 모티브가 된 capcold 님의 '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 보기


capcold 님이 제시한 전략 가이드는 총 12가지. 하나같이 귀담아 새겨 들어야 할 좋은 명언이지만, 이 명언이 제시하는 주제는 결국 하나입니다. '급진적인 정책보단 지금 여기서 수 있는 정책을, 대중을 무시하는 정책보다는 대중이 따를 수 있는 정책을,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매혹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좀 멋있어져라' 입니다.

 

사실 작년의 촛불 시위부터 올해까지 이어져온 진보에 대한 논쟁 중에서 쉽게 비쳤던 것은 '지금보다도 색깔을 선명하게 해야한다' 식이 강경론이었습니다. 물론, 강하게 나갈 때에는 강하게 나가야죠. 하지만, 아무런 대안도 정책도 없으면서 무조건 세게 나가는 것 또한 일반 대중들 사이에는 별로 멋이 없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었을까요? 결국은 자기 자신의 신체적 문제와 관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있었던 인권위 독립성 문제, 영어 교육의 문제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정책으로 여겼지만 쇠고기 수입 문제는 건강과 직결이 되는, 직접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병크를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인기를 얻는 이유 또한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 개새끼'나 '수구 꼴통'은 생각 외로 많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의 구성원이나 정책은 문제가 있지만, 단 하나 칭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반 대중들이 끌릴 만한 정책과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난 4.9 총선 때는 시민들의 투기 욕망을 자극할 만한 소재 '뉴타운'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그 후에는 정부에서 경제 살리기, 녹색 성장, 중도 실용 등을 내걸면서 판도를 자신에게 쏠리게 만들었습니다. 야당이나 시민 사회 단체에서 아무리 반대를 해도, 정부에서 선택한 '용어'와 '프레임'은 무척 대중들에게 끌리는 목소리였고 그 정책은 맞아 떨어져 결국 지지율이 점진적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넘어가는 대다수의 시민과 유권자들을 '수구 꼴통'으로 몰아 붙이고 '우리가 최고다' 라고 선전하는 것이 답일까요? 아니면 급진적 성격을 강화해서 '우리야 말로 선명한 야당(진보)다' 라고 내거는 것이 우선일까요? 아까부터 계속 말했지만, 시민들은 몰아 붙이고 자신의 선명함을 강화시키는 것은 극소수의 열혈 지지층만 끌어 모을 뿐, 정작 일반 시민들의 지지는 얻을 수가 없는 방법입니다.

 

오바마가 선거 운동을 했을때를 생각해보세요. 'YES WE CAN' 을 선거 문구로 걸고서 경제 파탄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미국 시민들에게 의료 보험망 설치, 재빠른 경제 회생, 사회 보장망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공화당 측에서 네거티브 전략으로 오바마의 부끄러운 과거, 애국주의를 부추기면서 지지율을 끌어모으려고 했지만 이미 부시 집권 시기에 신망을 잃을 만큼 잃었고, 거기에다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세력이었던 백인 하층 주민들도 경제 회생 및 사회 보장 강화를 내건 오바마에 끌리게 되었고 결국 민주당은 8년 만에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지난 6.5 재보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민주노동당은 광주 서구, 그리고 전남 장흥에서 당선자를 내었죠.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평소에 지역에서 꾸준히 시민들을 위한 활동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즉, 기초부터 차근차근하게 입지를 다져왔고 그로 인해서 지역 시민들이 끌릴 수 있는 기반 여건을 마련했다는 것이에요. (선거 때 지역을 기반으로 한 후보가 주로 당선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제 선명성을 논하기 전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국개로 몰아붙이기 전에 이제 시민들이 다가갈 수 있는 끌리는 진보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슷한 개념은 아니지만, 진보신당이 주장했었던 패션 진보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유산이기는 합니다. 정작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진보를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가 느낄 수 있게, 네거티브 전략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접근할 수 있고 일명 '떡밥' 이 가능한 정책을, 그러면서 선택이 진보 진영으로 귀결되는 전략으로 갈 수 있는 매혹적인 정당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추신. 진보와 관련이 많지는 않긴 하지만, 인문학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기에 참고하여 씁니다. 연구공간 (최근에는 코뮤넷으로 확대한) 수유+너머 라는 곳이 있어요. 대다수의 학자가 인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며 지원금 확대에만 눈이 몰려있을 때, 연구원들, 아니면 그냥 인문학을 전공한 '반백수' 였던 사람들이 돈을 모아 장소를 빌려 인문학을 연구하고 시민들에게 가르치는 공간을 열었습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어려운 주제를 다룬게 아니고, 익숙한 주제 (열하일기나 영화, 책으로 보는 인문학 등) 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많이 오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게임에서 라이트 - 코어 유저 순으로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수유+너머는 인문학 관련 단체에서 권위있는 단체가 되었고 최근에는 강원, 구로 등지에도 분원을 내는 등 외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직 재정은 그리 많지 않고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사장 위기에 있는 모든 분야가 참고해야할 조언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