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외전'에서는 어떻게 박재범 씨의 비하 발언이 어떻게 확대 되었고, 그 안에 숨은 문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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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 : 논쟁이 지나간 자리
① 잘못 연결된 고리
박재범 씨가 올린 글은 명백하게 한국을 비하한 발언이다. gay라는 단어의 해석에 따라서 약간 뉘앙스는 달라지겠지만, 어떻게 해석해도 결국 본질은 '한국은 참 구리고, 힙합을 모르는 나라' 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일이다. 단순히 한 가수가 철없을 시절에 올린 찌질한 글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점점 여러 가지 의미가 붙게 되었고 급기야는 애국에 대한 논의가 되어버렸고, 더 나아가서는 한 가수의 존폐 문제를 다투는 사안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가 박재범 씨의 발언은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던 것일까?
좀 길으니 가려둡니다
신문 특종을 기점으로 문제가 커지다
처음에는 단순히 박재범 씨로 '추정되는' 마이스페이스(Myspace)의 화면이 일부 게시판을 떠돌아다녔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단순히 추정에 불과했고, 몇몇 사람들만 알음알음알던 형편이었다. 문제가 확대된 것은 <동아일보>의 보도부터였다.
▶ '2PM' 재범 "한국 역겨워…美 가고싶다" - 동아일보, 2009년 9월 5일, 남원상 기자
이택광 교수의 비하 사건 보도의 첫 시작을 분석한 포스팅 (클릭) 에 의하면 <동아일보>의 보도가 특종이었던 것으로 비추어진다. 아무리 작은 사건일지라도 <동아일보> 같은 메이저 언론사에서 보도하는 순간, 문제는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사건은 확대된다. <동아일보>의 특종으로 인해 단순히 인터넷 공간에서 '철없는 행위'로 남았을 이 흔적은 첫 보도를 기점으로 애국주의 문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사 마지막에 "제2의 스티븐 유" 등의 네티즌 의견을 언급하면서 의도적으로 박재범을 유승준과 같은 시점에서 보기를 원했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번 보도의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유승준의 문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현역 입대를 주장하다가 말을 갑자기 바꾸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입대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한창 유승준이 인기 있었을 때 미디어에 인터뷰가 나오면 유승준은 대부분의 자리에서 '현역 입대' 를 주장했었다. 유승준의 행위는 일종의 '대국민 약속'을 기만한 행위였다.
하지만 박재범의 문제는 무엇인가? 4년 전에,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끼적거린 것에 불과하다. 비록 그 글이 매우 근거가 빈약하고 찌찔함이 강한 글이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밝힌 사안은 아니었다. 언론에서 설레발을 치면서까지 특종으로 보도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그 보도를 시작으로 많은 언론들은 박재범의 마이스페이스 한국 비하 발언을 너도나도 올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문제는 '한국을 비하한 놈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 문제가 되었다.
① 왜 한국을 비하하면 안 되는가?
이렇게 연예인이 4년 전에 사적으로 올린 글이 암암리에 퍼지다가 신문 보도로 인해 활동의 위기에 처한 사건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사례가 떠올랐다. 9.11 테러 직후의 미국을 생각해보라. 미국을 비하(비판) 하는 보도 / 발언의 논리가 옳든 옳지 않든 간에 공화당의 애국주의성 공세로 미국 시민들은 자신이 '애국자'라는 감정에 휩싸여 '감히 위대한 미국을 공격한 자'들에게 테러 수준에 가까운 공세를 가하였다. 아나운서가 해고되고, 가수가 한 동안 활동을 중단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떠하였는가?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애국주의는 조지.W.부시 임기 내내 계속 이어져 미국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위협했던 '애국법' (PATRIOT Act) 을 통과하게 만들었고, 부시 대통령의 계속되는 삽질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을 받쳐준 (사실 리만브라더스 부도같은 사태가 없었더라면 높은 지지율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큰 디딤돌이 되었다. 영화 「딕시 칙스 : 셧 업 앤 싱」 (그러니까, '닥치고 노래나 불러라'는 뜻) 에서도 나오듯이, 부시에 대한 비난은 곧 미국에 대한 비하가 되어 딕시 칙스가 한 동안 미국에서 활동을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애국주의를 정권의 인기 몰이에 '적절히' 활용한 것이었다.
이번 사건도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9.11 직후부터 경제 위기 전까지의 미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단지 박재범은 찌질한 한국 비하 발언을 남겼을 뿐이었고, 그에 걸맞는 처사는 '어머 저 찌질이 새끼' 라고 하면서 가볍게 넘어갈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에 애국주의가 결합되면서 상황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당장 박재범에게 '매국노' '변절자' 라는 칭호가 붙었고 그가 미국에서 살았다는 경험을 활용해 '그렇게 한국이 싫으면 미국에 가서 살아라' 라는 말도 나왔다. 글쎄, 너무나 쓸데없는 비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연예인의 과거 발언에 분노하면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기 전에 지금 머리 위에 앉아서 교묘하게 지지율을 상승하고 있는 분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당신은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냐고? 물론 한국은 좋아한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기도 하고 별 일없으면 여기서 여생을 살다가 죽을 나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좋을지라도 불만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술마시고 취하다 보면 '에이, 저 더러운 세상. 한국은 참 답답한 나라야' 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 않는가. (사실, 획일적인 문화가 공고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런 말이 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재범의 그 발언도 동일 선상에서는 바라볼 수 없는 것인가? 박재범의 그 발언이 나온 이유는 오직 박재범만 알 수 있다. 어떤 시기에, 어떻게 하다가 나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그 발언에 천착해 어떻게 이 '매국노'를 징벌할지를 고민한다. 이게 여기서 그친다면 다행이겠지만, 이 애국주의가 누군가에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해선 안된다. 만약 누군가가 '박재범 씨의 한국 비하를 반면교사 삼아서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기르자'고 발언한 뒤 4대강 정책을 '자긍심을 기르는 정책'으로 포장하면, 이젠 어떡해 할 것인가? 찬성하고 싶지는 않은데 반대하면 매국노로 몰리는 현실은 불령선인, 반동분자 몰아붙이기의 재현일 뿐이다.
② '솔직함' 의 문제, 그리고 '심판' 의 문제
이제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해보자. 박재범이 한국 비하 발언을 올린 사이트는 마이스페이스였다. 한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박재범은 미국에서 너도나도 사용하는 마이스페이스에 가입하였고 아마도 가수를 준비하는 동안 여러가지 심정에 대해서 털어 놓았을 것이다. 박재범의 한국 비하 발언도 내면 속의 '솔직함' 에서 터져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박재범은 JYP의 아이돌 그룹 2PM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고 너도 나도 아는 공인의 신분이 되었다. 자- 이렇게 인기를 누리는 생활을 하던 도중에 자기가 4년 전에 올린 그 발언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모 신문에서는 특종으로 보도를 치고 다른 신문에서 너도나도 보도를 하고, 그 결과 시민 대부분이 박재범이 4년 전에 (그런데 이것은 모르고서 단순히 현재 시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 한국 비하 발언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선 애국주의 문제를 빼고서 생각해보자. 박재범이 4년 후 공인이 될 줄 모르고서 함부로 손을 놀렸으면 안 되었을까?
그런데 애국주의, 비하 문제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개인 미디어를 통해서 공인의 '솔직함' 이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은 상당히 많다. 좋은 방향으로 오르내린 적은 노라조가 악플에 유연하게 대처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지 (클릭) 김민선, 이준기 등의 배우가 작년에 한창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끌시끌할 때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든지 (이쪽은 지금 뉴라이트 계열에서 박재범 문제와 비슷하게 까이고 있지만) 등이 있겠고, 안 좋은 방향으로 오르내린 적은 지금 상황을 포함해서 인기 여자 그룹의 한 멤버가 데뷔 전에 악플을 남겼다든지, 모 가수가 악플을 악플로 대처했다든지 등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안 좋은 방향으로 오르내린 사안에 대해서 사람들은 '솔직함'에 '심판'을 가하기도 한다. 이 심판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 공인의 솔직함이 너무도 추악하기 때문에?
'솔직함' 의 문제를 먼저 따져보자. 인터넷의 특성상 특이한 발언, 특히 공인의 발언일수록 더 크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박재범을 포함한 공인들은 싸이월드나 트위터 등의 1인,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사적인 공간으로 여겨서 '솔직한' 심정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1인 미디어는 개인의 사적인 미디어인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쳐다보는 공적인 공간이기도 한, 이중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너무 솔직한 발언을 하는 순간, 대중들은 그 발칙함에 치를 떨고 공격을 개시한다. 설사 미래의 일을 몰랐다 할지라도, 너무 많은 것을 공개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떡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는다. 흔히 연예인으로 데뷔한 사람들 중 일부가 과거의 (문제가 될) 기록을 삭제하듯이, 자신의 과오를 돌아 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심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인의 발언에 대해서 나는 싫어, 나는 그럴수도 있다고 보는데 처럼 개인적인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 집단적인 폭력이 될 경우 - 아예 한 연예인의 연예 생명의 생사를 결정하는 - 심각한 문제가 된다. 누가 대중에게 연예인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주었는가? 당할 짓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것인가? 헬라 사건에서도 언급했었지만 (클릭) , 아직 자세한 정황이 밝혀지지 않고 (당연한 것이, 이게 어째서 나온 발언인지 어떻게 아는가? 박재범 본인만 알지.) 단순히 찌질거린 발언에 불과한 것에 성을 내면서 죽이자느니 살리자느니 하는 것은 그냥 폭력이다. 아무도 대중들에게 생명을 결정한 권한 따위는 주지 않았다. (클릭)
결론 : 지나친 솔직함, 대중의 폭력, 그리고 언론과 시민들의 애국주의의 환상적인 결합의 결과
이제 맨 첫머리에 제시한 문제의 결론을 내려보자. 어쩌다가 박재범 한국 비하 문제는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던 것일까. 박재범은 1인 미디어가 가진 공적 / 사적 미디어라는 이중적 속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한국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게 되었다. 이게 그냥 계속 가만히 있었으면 끝날 일이었겠지만, 그가 연예인이 되고 나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의 지난 행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런 사람들의 추적 욕구에 힘입어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하 발언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틈타 특종에 대한 욕구를 노리고 있던 한 신문이 최초로 보도를 하게 되었다. 교묘하게 박재범을 '한국을 비방하는 매국노' 라는 함의를 심고서. 그리고 순식간에 보도하는 신문은 늘어만 갔고 애국주의에 휩싸인 언론과 대중은 그를 '조국도 모르는 후레자식'으로 폄하하고 그의 연예인 생명마저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국노를 처단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행하게 되었다.
1인 미디어의 영원히 남는 흔적 - 지우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 - , '심판'과 애국주의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욕망, 거기에 한 연예인의 찌질한 과거가 결합한 결과는 거대하게 부풀려진 사건 뿐이었다.
참고 자료
- 소셜 미디어 관련
▶ 한국비하 분개드립, 소셜 미디어의 속성에 대처하기 - capcold, 2009년 9월 7일
▶ 2PM 박재범의 한국 비하 발언 - 이택광, 2009년 9월 7일
▶ 소셜서비스는 시한폭탄, 2PM 박재범 사례 - 그만, 2009년 9월 6일
▶ 당신도 박재범이 될 수 있다 - 현실창조공간, 2009년 9월 5일
- 애국주의 관련
▶ 박재범이 말해주는 것 - socio, 2009년 9월 6일
▶ 2PM 재범 한국비하 논란, 광기어린 쇼비니즘을 보다!! - 리장, 2009년 9월 6일
▶ 싫어하면 떠나야 하는 나라 한국 - 2PM 박재범 사태를 보면서 - luckyme, 2009년 9월 6일
- 대중의 '심판' 관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