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적출, 선진문화 창조? - 대한민국 문화계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가 [씨네21 706호] (모아진 리더를 설치해야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예종에 대한 문광부, 그리고 문화미래포럼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의 이념적 / 파상적 공세가 한창 불거져 나왔을 때 씨네21에서는 특집 기사로 한예종을 비난하는 두 명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한 명은 현재 문화미래포럼의 영화분과의 주요 인사 조희문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1기 영진위 위원, 전 영등위 위원) 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정재형 동국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였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도 속으로 많이 열을 받았을 것 같지만, 인터뷰를 보는 독자의 입장인 나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있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한예종이 '좌파의 온상' 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인터뷰 내용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기사가 나온지는 꽤 되었는데 그 때 마침 수중에 돈이 없어서 구입을 못하고 그냥 서점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706호의 판매 기간도 지난 만큼, 인터뷰 내용을 일부 발췌하기로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두 분의 인터뷰는 진짜 걸작이다.
(모든 인터뷰 내용의 저작권은 인터뷰를 작성한 이명진 씨, 사진을 촬영한 최성열 씨, 그리고 ㈜씨네21에 귀속됩니다.)

Part 1. "그동안 한 쪽에 너무 치우쳐" 문화미래포럼 영화 분과 주요 인사 조희문 교수
맨 첫 번째 질문인 '한국문화미래포럼에 참여한 계기는." 은 그나마 정상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영화계의 입장은 진보 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주장은 일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수긍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세번째 질문인 "독립영화라는 개념 자체에 부정적인 것 같다." 에서 부터 그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 독립영화라는 개념 자체에 부정적인 것 같다. (이후 강조 표시는 개인적인 강조 표시입니다.)
"1980년대 열린영화, 제3영화, 대안영화, 작은영화 등으으로 불렸던 영화운동의 근저에는 외세 배격 등의 주장이 있었고, 이는 이북의 선전 이념과 닿아 있다. 반미, 독재 정권 타도라는 담론의 연장에서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가 나왔고, 김동원의 <상계동 올림픽>이 나왔다. 그런데 영진위가 만들어지면서 탈충무로 영화와 독립영화라는 개념으로 한데 섞여버렸다. (중략) 운동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하나의 권력화된 개념이 되어버렸는데 , 이제는 좀 걸러져야 한다. (중략) 단적으로 <디 워>가 개봉했을 때, (독립영화 쪽에서) 강하게 비난했는데 지금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결과물에 대해서는 호오가 있을 수 있지만 심형래를 영화계의 공적처럼 비난하는 건 잘못이다. <화려한 휴가>의 앞길을 막아서인가. 심형래의 국제적 전략은 국내 영화산업 차원에서 유효했다고 봤는데, 말초적인 논쟁 속에서 호도되고 묻혀버렸다."
조희문 교수는 독립영화 자체에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북의 선전 이념을 운운하면서 간접적으로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취급을 하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빨갱이. 너무나 간단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오! 꿈의 나라>가 단순히 반미와 독재 정권을 타도를 위해서 나온 영화였는가? 그 밑바탕에는 광주 5.18 민주 항쟁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다. 상계동 철거민를 다룬 다큐 <상계동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다. 사회적 약자를 다룬 시선을 단순히 공산주의 이념으로 환원하는 센스는 참 놀라운 발상이다.
게다가 그 다음에 나오는 말, 권력화. 독립영화가 권력화되어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는가? 오히려 사업영화의 텃세에 끼어 고생하다가, <워낭 소리> 등이 빛을 본 것이었지 권력화된 개념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업영화의 대안적 개념으로 나온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온,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 불거저 나왔던 <디 워> 논쟁,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은 둘째치고, 논쟁의 이유를 <화려한 휴가> 흥행을 위해서로 본 생각이 차 대단하다. 당시 이송희일 감독 등이 주장한 이유를 자세히 읽지 못한 것일까. 무분별한 스크린 점유가 (이것은 현재의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에도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뜻에서 나온 비판문을 오독하고 있다. 게다가, 북미권에도 실패한 국제적 전략을 옹호하는 태도란.
평소에 영진위 해체, 축소를 주장하시던 분 답게 질문에서 영진위에 대한 분노가 넘쳐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1기 영진위 위원 취임 당시 영화계의 반발로 불명예 퇴진한 것에 대한 단순한 복수로 보인다. 자리 싸움말이다.) 기자가 영진위의 행보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 영진위의 지난 10년 가운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한 부분은 전혀 없나.
"별로 없다. (이하 생략) "
그 뒤의 말은 영진위가 과도하게 개입해서 문제를 보았다는 것인데, 정말로 영진위는 좋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일까? 그건 편견에 가득찬 생각이다. 마구잡이로 집계되던 영화 관객수에 일률적인 시스템을 제공한 KOBIS가 있고,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협력하여 빛을 보지 못하던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의 개봉을 지원하고 아트플러스 극장체인을 도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영화 불법복제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한 측면이 아쉽지만 앞에서 말한 노력들을 단순히 '과다 개입'으로 치부하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편견에 가득찬 상태에서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더니.
마지막 질문에서 조 교수는 "(영화제) 인력들이 너무 폐쇄적이다. 끼리끼리가 상당히 심하다. (중략) <씨네21>도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씨네21>에 세뇌된 애들 대학교에서 교정하느라 힘들었다." 라고 밝혔다. 과연 정말 폐쇄적인 자들은 누구일까? 마음대로 세뇌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교정 (이라고 쓰고 뉴라이트 지식 주입) 을 하는 것을 자랑하는 태도로 그의 인터뷰는 끝났다.

Part 2. "맞다, 밥그릇 싸움이다."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운영위원 정재형 교수
공무원 노조에서 파업 취지를 밝히며 '밥그릇 싸움' (물론 공무원들의 밥그릇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민들의 밥그릇을 의미한 표현이었다.) 이라는 말에는 정겨움이 느껴졌었는데, 정 교수의 말에는 끈적끈적한 더러움이 느껴진다. 한예종에 대한 공격이 갖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앞의 인터뷰에는 주로 문화미래포럼의 설립 취지와 싸움의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 하지만, 그 부분은 한예종이 왜 설립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답변이었다. 그의 속셈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좀 뒤에 있었다.
- 국가지원이 집중됐기 때문에 학생들이 한예종을 선택했을까?
"장점이 있다. 다들 왜 그렇게 질투하냐고 그런다. 맞는 이야기다. 질투라는 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오만이다. 사립대학들 열악하다. 하지만 콩나물 장사 한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몇 십년 동안 닦아놓았던 터전과 기득권들을 하루 아침에 몇몇 엘리트들과 정치권력이 무시했다. 이대 무용과가 부조리하다고 판단하면 거기를 치면 되지, 왜 거기를 엎으려고 최고의 대학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한예종의 무용원이 대학이 되면 이대 무용과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하 생략) "
정체가 드러났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한예종을 공격한다고 발혔다. 정 교수는 한예종이 대학이 되면 다른 대학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이공계 쪽은 KAIST라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 있는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KAIST는 국가의 지원으로 다른 학교들 보다는 마음 껏 연구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학교들이 KAIST를 없애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실용적 기술 위주의 교육만 실시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KAIST의 모습을 본받고서 다른 대학들도 따라 잡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경쟁 교육은, 사회적 약자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에 쓰는 것이다.)
등록금으로 쌓아올린 유보금을 잔뜩 가지고 있는 사립대학 재단 측에는 아무런 말을 못하면서, 오히려 비판을 하면 욕을 한다. 이건 뭐 적반하장이지. 터전과 기득권이 있으면 뭐하나, 시설도 엉망이고 노력도 없다. 독립영화 측에는 영진위가 잔뜩 지원만 한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문광부에게는 자신들을 지원해달라고 핏발을 올린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가?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한예종에 쓸 돈, 통섭에 쓸 돈으로 원로 영화인들에게 연금을 달라고 주장하면서, 한예종 교수나 우리나 똑같이 속물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영화계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예우는 차차 갖춰야 하고, 그대들은 분명 속물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예종 교수들은 정권의 꽁무니에 붙어서 적반하장식의 말도 안되는 논리를 쓰고 공격하지는 않았다.
두 중진 / 원로의 인터뷰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들에게 대한 예우를 해줄 것은 요청하면서, 정작 하는 일은 색깔론과 적반하장식의 전개, 그리고 치졸한 앙심에 따른 정책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영화계와 예술계의 저명한 교수로 살고 있고, 자신들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들에게 원로라는 명칭이 좀 아깝지 않나? 더 걸맞는 명칭인 듣보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