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마다 기분이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옵니다. 뉴스를 보니 이번에 서울시에서 시청 광장과 앞으로 문을 열 예정인 광화문 광장의 ‘폭력’ 행사를 제한하다는 군요. ‘폭력’의 징후가 느껴지거나 시위로 변한 징조가 보이면 허가를 내리지 않겠다는데 서울시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미리 판별을 하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가운데, 학생들은 학교에서 신문을 보면서 공권력을 욕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점점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권위를 잃어 가고 있는 이 때, 공권력은 갖은 애를 써가면서 권위를 세우려고 합니다. 꼭, 구시대적 가부장이 폭력으로 권위를 유지하려는 것을 보는 같습니다.

 

이번에 본 영화 「거북이 달린다」(제작 씨네2000, 감독 이연우) 는 솔직히 말하자면 제작 발표 당시에는 보기가 무척 꺼려졌던 영화였습니다. 별 볼일 없는 시골 형사가 탈주범을 잡는다는 줄거리에서 주연 김윤석의 전작인 「추격자」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추격자」에서 김윤석 씨가 맡은 중호는 전직 형사였고, 이번 작품에서 김윤석 씨가 맡은 역할인 조필성 역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형사 아닌 형사입니다.

 

필성은 직장인 경찰에서도 그럭저럭 살고 있고, 가족에서도 만화방을 하는 아내 (견미리 분) 핀잔을 받으면서 사는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가장입니다. 그나마 각각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이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도 친절히 대해주는 삶의 위안인 존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성의 마을에 소싸움대회가 열리고 기적같이 필성은 판돈의 6배를 따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신해온 탈주범 송기태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계속 꼬이게 됩니다. 형사 체면에 범인에게 얻어맞고 돈도 빼앗겼기 때문이죠. 오히려 필성은 동료와 아내 둘에게서 술에 취했냐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한 싸우지도 못하고, 집안에서도 아내의 잔소리만 듣게 된 처지에 놓인 필성은 오기가 단단히 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필성이 탈주범 기태를 만났다는 소리를 믿지 않는 상태에서 필성은 그의 아지트를 발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기태가 마을에 있다는 것을 믿게 되지만, 서울에서 온 형사들과 시골 형사들 간의 알력이 붙으면서 검거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갑니다. 오히려 서울 형사들은 필성이 겨우 기태를 잡을 뻔한 상황에서 방해만 놓게 됩니다.

 

필성이 기태를 잡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권위 살리기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필성이 기태를 만나기 전에도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좋은 처지를 받지 못하는 상태였고, 게다가 기태에게 얻어맞으면서 약간이나마 있던 권위마저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그 권력으로 약간의 ‘용돈’을 받아올 수 있던 필성은 모든 권위가 사라지게 되자 철저히 자신의 권위를 살리는데 집착을 하게 되고, 표출 대상이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기태를 잡으려고 하는 것으로 풀게 됩니다. 탈주범을 잡아서 포상금도 받고, 특진도 하고, 아내에게서 인정도 받고, 일석삼조가 아니겠습니까.

 

서울 형사와 시골 형사의 주도권 다툼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시골에 내러온 서울 형사들은 의도적으로 시골에 대한 비하심을 표출하면서 곧 기태를 잡을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태에게 역으로 당하거나, 퇴물 형사로만 생각했던 필성이 의외의 (사실은,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필사의 힘을 다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서서히 시골 형사들의 주도권이 생기자 갑자기 서울 형사들은 기태를 잡기보다 필성을 잡는 것에 - 특별한 죄목도 없습니다. -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권위가 있던 자들이 권위가 무너지고, 권위가 없던 자들에게 권위가 생기니 두 세력들은 귄위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영화는 앞서 말했던 대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필성은 필사의 사투 끝에 필살기 (?) 로 기태를 붙잡는데 성공하고, 서울 형사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물만 먹게’ 됩니다. 물론 특진과 포상금을 받게 되고,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필성의 권위는 올라갑니다. - 사실 가정에서 필성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소재는 아내의 말투와 표정입니다. 평소에 항상 불만적인 표정을 보이던 아내는, 그가 범인을 잡게 되고 나서야 활짝 웃는 표정을 그에게 보여 줍니다.

 

사실 권위가 원래 (약간이라도) 있던 자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권위가 사라지게 되면 다시 그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예전의 (조그많지만 그래도 쏠쏠했던) 영광은 그것을 겪어 본 자에게는 달콤한 마약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전혀 승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주범의 은신처를 밝혀내고, 검거까지 한 필성의 대단한 기록은 예전에 지녔던 경찰로서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경찰, 검찰에서 보여주는 정책들은 어떤가요. 항상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온 자들이 권위를 깎아왔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필요 없었던’ 권위를 줄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했던 ‘사실상 집회, 시위 허가제’같은 정책들로 필요한 권위를 그들 스스로 깎아먹고 있습니다. 필성과 시골 형사들이 얼마 안 남은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 범인을 잡는 노력을 보인 반면에, 지금 정책을 추진하는 ‘윗분’들은 범인의 편에 서서 시민들을 때려잡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권위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옛날 5, 60년대 한 영국 기자가 말했던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영화万보기」2009년 6월 23일 기사. 아직도 이 영화가 김윤석 씨의 전작 「추격자」(감독 나홍진) 을 따라한 영화로 알고 있는데, 전혀 아니다. 물론 포스터 이미지로 봐서는 그런 이미지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페이크. (…) 제목이나 포스터가 더 영화에 어울렸다면 관객이 더 들 수 있을 것 같은 수작.